오늘날 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중산층은 공동화 되어 간다. 중산층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있고 중산층과 부유층의 간극은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가 시장제도로 지배되는 자본주의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

 

러나 그 자본주의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최고의 효율적 제도라는 교조적 믿음에 근거한 자연의 법칙인양 당연시해온 결과가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심한 낭비와 심각한 불평등, 심한 고통이다.

 

 

경제적 최상위층은 생산에 기여한 것이 많아 그 엄청난 부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특권과 지위를 이용하여 사회적 생산으로

 

부터 터무니없는 양을 빼앗아 가는 지대 추구로 일관하고 있다. 시장 경제를 구성하는 각종 제도는 경쟁과 효율성과 투명성 등 교과서에 나

 

오는 시장 경제의 각종 요건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소수계급의 지대 추구가 더욱 큰 규모로 확대 재생산되고 또 안정적으로 영구

 

화되도록 보장하는 장치로 디자인되고 있다.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능력이 부족해서, 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적어서

 

그토록 눈곱만한 소득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자본주의가 무시무시한 전쟁터로 변질되어 갈 때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이를 시정하고 바로잡아야 할 각종 정치적, 사회적 영역

 

의 제도장치들 또한 소수계층의 특권과 안녕을 영구화하기 위한 장치로 변질된지 오래다. 현실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야 할 경제학은 조

 

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처럼 대중들을 세뇌하고 마취시키는 도구가 되었고 불평등을 시정할 재분배의 마지막 장치인 조세 정책은 소

 

수계층 부자들의 손아귀에 떨어져 버린 지금 피케티의 유일한 대안인 누진세와 국제적 부유세의 실현 가능성은 멀고도 험난할 것만 같다.

 

 

21세기 자본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저서다. 자산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커지면서 소득불평등 역시 점점 심화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습자본주의의 특징이 부(富)와 소득의 “끔찍한” 불평등이라고 꼬집는다. 피케티는 매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지난 2백 년 동안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상세히 밝힌다. 피케티는 특히 부가 하는 구실을 집중으로 다뤘다. 국가가 하는 주요한 재분

 

배 기능이 모두 사라진 자유시장 자본주의에서는 비민주적인 소수 지배가 생겨난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불평등으로 인해 시장 경제가 본래 가질 수 있는 역동성과 효율성과 생산성을 모두 마비시키고 이것이 다시 효율성과 무관한 분배

 

구조를 고착화시킴으로써 파멸적인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여 사회 전체를 침몰시킨다. 따라서 불평등은 시장 경제의 작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용인해야 할 필요악이 아니라 갖은 노력을 통해서 예방하고 시정해야 할 장애물이다.

 

 

사유재산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특히 지식과 기술의 확산을 통해 격차를 좁혀가는 강력한 수렴의 힘을 지니고 있지만

 

이런 경제는 또한 민주사회와 그 사회의 기반이 되는 사회정의의 가치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 될 강력한 양극화의 힘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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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칼 포퍼 지음(이한구 옮김)

 

 

「무엇보다 가장 으뜸가는 원칙은 여자든 남자든 아무도 지도자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마음도 전적으로 자기 스스로 무언

 

가를 하게끔 습관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열성적으로 하는 것이든 장난삼아 하는 것이든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전쟁 때나 한

 

창 평화로운 때에 그의 지도자에게 눈을 돌려 그를 따라야 한다. 그리고 사소한 일까지도 지휘를 받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만 잠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움직이거나 씻거나 먹거나 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은 오랜 습관에 의해 결

 

코 독립적 행동을 꿈꾸지 않고 전혀 그런 짓을 할 수 없게 되도록 자신의 영혼을 길들여야 한다.」

 

 

서구 정치, 사회, 철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 중의 한명인 플라톤의 말이다. 이 한마디에 플라톤의 모든 정치사상이 담겨 있다고 나

 

는 생각한다. 칼 포퍼는 플라톤의 정치 철학을 비판한다. 당시 철학자 들은 플라톤의 위대함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플라톤의 정치 철학이

 

순진하고 무해한 것이라고 믿었다. 칼 포퍼는 이러한 믿음에 반대하며 플라톤의 정치 철학에는 사기와 폭력, 인종차별, 우생학 등 끔찍한

 

전체주의자의 악몽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칼 포퍼에 의하면 불변의 규칙이나 전통적 권위에 의존하는 마술적 사회나 부족사회 혹은 집단적 사회는 닫힌사회이며 이성과 자유, 타인

 

에 대한 박애의 신념으로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열린사회이다. 열린사회는 비판을 수용하는 사회이며, 더 나아가

 

진리의 독점을 거부하는 사회로서 여기서는 아무도 독단적인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열린사회에서는 비판받지 않아도 좋을 절대적 진리

 

란 용인되지 않으며,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통용되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다. 반면에 닫힌사회는 전체주의

 

적 사회이며, 역사주의에 기초한 사회이다. 역사주의는 전체 역사의 과정이 냉혹한 역사의 법칙에따라 필연적으로 전개되어 간다는 교설이

 

다.

 

 

칼 포퍼는 특정한 계획이나 목표에 입각해 사회 전체를 개조하는 사회혁명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특정한 목표 또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 전체를 재조직하려는 혁명가들의 동기는 고상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청사진이 옳고 훌륭하다는 근거는 없다. 그들이 국가권력을 장악

 

한 다음 그 청사진에 따라 재조직한 사회가 혁명 이전의 사회보다 확실히 훌륭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정의, 평등, 인간해방 등 혁명가들

 

이 내거는 목표가 무엇이든 어떤 추상적인 선을 실현하기 위해 폭력으로 사회를 재조직하는 혁명은 반드시 전체주의 독재로 귀결된다. 이

 

것이 그의 주장이다. 불행하게도 20세기 세계사나 우리의 현대사를 보더라도 그의 말이 옳았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다. 그래서 포퍼는 추

 

상적인 선을 실현하려고 혁명을 하기보다는 현실의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한 사회적 개혁과 개량에 집중하자고 호소한다.

 

 

전체주의와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열린사회의 이념은 퇴조하는 듯했다. 열린사회의 적이 사라진 상황에서 사멸한 적들에 대한 공격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열린사회의 적들은 모습을 바꾸어 새롭게 등장하면서 여전히 우리가 추구하는 열린사회를 위협

 

하고 있다. 열린사회에 대한 검토와 논의가 지금도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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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술은 자연 중에서도 가장 이성적이고 훌륭한 창작품인 인간을 모방하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인간은 국가라 불리는 위대한 리바

 

이어던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리바이어던은 인조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자연인보다 크고 강하며 자연인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만

 

들어진 것이다. 토마스 홉스가 말하는 국가다.

 

 

리바이어던은 성서 <욥기>에 나오는 가상의 동물이다. 성서에 의하면 리바이어던은 몸이 두꺼운 비늘로 덮여 있어 칼. 창. 화살 등으로도

 

뚫지 못하며 입에서는 불을 코에서는 연기를 내뿜는다. 홉스는 왕권의 강화 이후 왕당파와 의회파와의 갈등이 내전으로 이어지는 영국의

 

정치현실에서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통치자의 등장을 염원했다. 신의 말씀이 세상의 전부이던 중세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

 

화를 보장하기 위해 개인간의 계약을 통해 절대권력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라는 괴물 리바이어던은 홉스에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계약의 산물인 것이다.

 

 

홉스는 개인을 출발점으로 삼았기에 인간성에 대한 분석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인간에게는 일반적으로 끊임없이 힘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

 

으며 이 욕망은 오직 죽어서야 멈추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왕은 국내에서는 법으로 국외에서는 전쟁으로 자

 

신의 힘을 확실하게 하여야 한다고 홉스는 말한다. 이것은 '최악의 정부도 무정부보다는 낫다'라는 식으로 독재정권의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국민을 무시하고는 국가의 정당성을 세울 수 없다고 밝힌 점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권력이란 국민에 기초해야 한다는 홉스의 주장과 달리 최근의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정치상황들을 보면 우리의 지도자들은 '만

 

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로 역사를 되돌려 놓은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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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문학장르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들어 이 책을 소개하는 곳이 많아서 호기심으로 읽어본 책이다. 우리에게는 흔치 않

 

은 남미문학이라는 점과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점이 더더욱이나 호기심을 자극한것 같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5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의 겪는 고통과 절망을 다룬다. 이 소설은 부엔디아 가문의 선조가 마콘도 마을을 건

 

설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이 가문의 맨 마지막 후손이 그 마을의 멸망을 목도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가장 질서 있고 열심히 일하는 곳인

 

마콘도는 여러 면에서 에덴동산을 연상하기에 충분한 마을이다. 그러나 원시적인 마콘도 마을은 점차 현대 문명과 그 제도의 침투를 받으

 

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역사적 의미가 아주 강하게 부각된다. 이 작품 속에서 G.마르케스는 콜롬비아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라틴 아메리카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러하였듯이 콜롬비아 또한 오랫동안 스페인의 지배와 통치 아래에서 패배와 좌절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6세

 

기 중엽부터 콜롬비아는 뉴그라나다라는 스페인 식민지 가운데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고 19세기 초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스

 

페인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독립국가로 발돋움하였다.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백년동안의 고독은 콜롬비아가 직면한 구체적인 사회현실을 여

 

실히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콘도 마을은 목가적인 낙원과 같은 평화스러운 마을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부터 이 마을은 점차 폭력과 타락에 시달린 채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런점에서 볼때 작가는 이 소설

 

에서 부엔디아 가문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콜롬비아 더 나아가서는 남미대륙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고자 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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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유시민 지음

 

없는 것을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과관

 

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할 권리는 만인에게 있다. 저자 유시민은 이 권리를 소신껏 행사했다. 그가 말했듯이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

 

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본다. 과거를 회고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라면

 

서.

 

 

이 책은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이 4ㆍ19혁명으로 하야하고 이듬해 5ㆍ16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18년 동안이나 박정희 대통령 독재가 이

 

어지던 시절부터 약 55년 동안의 기록이다.그는 이 기간 동안 현대사의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큰 줄기로 삼고 저자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잔가지로 삼아 엮어냈다. 특히 박정희 정권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인 눈으로 그 공과(功過)와 산업화 과정을 고찰하면서 '산업화를 위한 독

 

재가 불가피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후 전두환 정권은 불필요한 독재의 연장이었을 뿐이며,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가장

 

평가절하돼 있으나 그의 대북정책만큼은 높이 사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때 드높은 결기가 빛나던 멋진 시절이 있었고, 김

 

대중 전 대통령은 공안통치를 하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으로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권력의 권위주의를 내려놓은 확고한 민주주의자였다고 평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ㆍ경제ㆍ대북정책 모든 면에

 

서 별 기대를 하기 어렵고, 지난 2012년 대선 때 51%의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것은 현명한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교학사 교과서 파동과 문창근 총리 후보자의 역사의식 문제로 또다시 얼룩진 우리 현대사를 본다면 그 이름에 걸맞는 역사는 역사 그

 

자체 안에서 방향감각을 찾아내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제대로 된 역사관을 갖는 듯 싶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왔다는 믿음은 우

 

리가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믿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미래의 진보능력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의 진보에 대한 관심도

 

이내 포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볼 때 '우리의 역사관은 우리의 사회관을 반영한다'라는 E. H. 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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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경제란 가능한 시장의 힘에 맞겨두는것이 좋다. 국영기업은 민영화되어야 하고 기업규제는 철폐되어야 한다. 감세는 좋은 것이고 분배보

 

다는 성장이 우선이고 세계화와 자유무역만이 살길이다.'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만들어 낸 핵심사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이윤 추구 활동에 대한 제약을 될 수 있는 대로 최소화하려는 사람들이 전파한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

 

이 자신들이 원하는 식으로 형성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고의적 조작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설득당한 사람들은

 

많은 경우 자기의 이익과 상반되는데도 불구하고 부의 재분배를 촉진하는 세금과 복지 지출을 낮추고 기업 규제와 노동자 권리를 줄일 것

 

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저자 장하준은 말한다.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 과학이 아니고 앞으로도 과학이 될 수 없다. 경제학에는 정치적,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확립

 

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학적 논쟁을 대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의미의 과학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에는 다양한 이론이

 

있고 각 이론은 복잡한 현실의 서로 다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도덕적, 정치적 가치판단을 적용해 결국 다른 결론을

 

내린다.

 

 

경제 문제에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다양한 경제학적 논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특정 경제 상황과 특정 도덕적 가치 및 정치

 

적 목표하에서 어떤 경제학적 시각이 가장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경제학을 배우라는

 

저자의 충고는 날카롭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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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매력에 또 한번 빠져들게 만든다. 진화생물학자가 아니라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었어도 성공했으리만큼 논리적이면서도

 

간결하고 생생한 비유와 힘이 느껴지는 문체를 가지고 있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 행동에 대한 난해했던 문제들을 유전

 

자의 관점에서 풀어 나간다.

 

 

도킨스가 소개하는 유전자는 다음과 같다.

 

"40억 년 전 스스로 복제 사본을 만드는 힘을 가진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났다. 이 고대 자기 복제자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그것들은 절멸하지 않고 생존 기술의 명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주 오래 전에 자유로이 뽐내고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 그것들

 

은 거대한 군체 속에 떼지어 마치 뒤뚱거리는 걷는 로봇 안에 안전하게 들어 있다. 그것들은 원격 조종으로 외계를 교묘하게 다루고 있으며

 

또한 우리 모두에게도 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것들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해주는 유일한 이유이다.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 기계이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 넣은 로봇 기계이다. 이 유전자의 세계는 비정한 경쟁, 끊임없는 이기적 이용 그리고 속임수로 가득차 있다.이것은 경쟁자 사이의 공격

 

에서 뿐만 아니라 세대 간 그리고 암수 간의 미묘한 싸움에서도 볼 수 있다.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원래 이기적

 

이며 생물의 몸을 빌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물의 이기적 행동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것도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기발한 발상인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유전자의 기능과 사실 다른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이 아

 

니라 유전자의 관점이라는 점이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만은 다르지 않을까?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은 맹목적으로 유

 

전자가 하라는 대로 따르지 않고 유전자의 전제적 지배에 반역할 수 있지 않을까? 도킨스는 인간의 특유한 문화속에 모방의 단위가 될 수있

 

는 문화적 전달자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 단위를 밈(meme)이라고 정의하였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으며 이 지구에서는 우

 

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는 도킨스의 마지막 말에 그나마 위안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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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버크하우스 2014.07.18 1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조지오웰은 작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실천적 사상가이다. 또한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길줄 아는 행동주의자다. 조지

 

오웰의 작품을 대할때마다 느끼는 나의 생각이다.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탄광 노동자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습에서 절망

 

과 희망을 확인하고 생생하게 노동계급의 삶을 담았다. 2부는 당대의 사회주의자들을 분석하며 왜 사회주의가 노동계

 

급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심도있게 전개해 나간다.

 

 

오웰의 사회주의는 이론적이지 않고 상식적이다. 그가 말했듯이 마르크스주의를 믿든 안믿든, 육체노동자든 사무직 노

 

동자든, 어떤 문화적 배경을 가지든 상관없이 '연합해야 할 사람은 사장에게 굽신거려야 하고 집세 낼 생각을 하면 몸

 

서리쳐지는 모든 이들이다'라는 것은 그가 생각하는 사회주의의 한 단면을 정확히 보여준다.

 

 

조지 오웰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그 당시 유럽에서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던 파시즘의 유일한 대항마이다.

 

「동물농장」과 「1984」에서도 보여주듯이 조지 오웰에게 있어 전체주의는 경계하고 타도해야 할 분명한 대상이다.

 

정치, 군사, 교육에 관한 모든 권력이 소수의 지배계급과 그 하수인들의 손에 들어가는 노예국가, 그의 표현대로 '외양

 

간 같은 사회'인 파시즘에 대한 경계와 그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로서 사회주의일 수 있다.

 

 

동정이나 연민만으로 노동 계급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뛰어가는 것이 때론 얼마나 어리석으며 가식에 찬 행동인지를

 

지적하는 오웰은 문화적, 경제적 장벽이 도사리고 있지만, 압제자에 저항하는 피 압제자들의 연대는 분명히 함께 추구

 

할 수 있는 이상이며, 그 이상을 위해서는 가식과 위선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오늘 우리에게도 여

 

전히 유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조지오웰이 그토록 갈망했던 정의와 자유의 실현을 위한 사회주의도 그의 이후 저작인 동물농장에서 보여주듯

 

사회주의 국가인 스탈린의 소련을 그토록 무시무시하리만큼 혐오했던 것을 보면 역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계

 

란과 우유를 빼돌리던 1%의 돼지들의 문제인 듯 하다.



Posted by 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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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경제에 대한 비판의 논지로서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들,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 지역화를

 

역설한다. 경제의 성장이 행복의 증가와는 별개라는 사실을 그리고 여전히 세계의 빈국은 여전히 가난하며 부국의 국

 

민들조차 불안과 불만이 가득한 것은 지금의 자본주의의 성장 일변도 경제학때문이라고 통렬하게 반격한다.

 

 

국제적인 거대 다국적기업의 볼모가 되어버린 각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자국 국민의 궁핍과 환경파괴, 부익

 

부 빈익빈 현상등은 이미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어버렸지만 그 잘못된 흐름을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저자 헬레나 노르베

 

리 호지에게서 위대한 선구자적 모습이 보인다.

 

 

오늘 러시아에서 G20 정상회담이 폐막되었다. 정상들은 선언문에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좋은 말이다. 과연 경제성장이 무한히 가능하다고 믿는 그리고 그

 

장지수에만 매달리는, 그래서 끝없는 환경파괴와 보이지 않는 약탈을 일삼는, 자국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만을 목적

 

로 하는 그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면 현실을 모르는 나의 건방인가?



Posted by 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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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은 1969년부터 2012년까지 44년 동안 71명이 수상했다. 유일한 아시안인 수상자는 1998년에 수상했던

 

인도인 아마르티아 센이 유일하다. 경제학상은 이론적인 업적이 중요한 평가의 대상이 되고 신이론 개척이 평가의 가

 

장 중요한 요소이다.

 

 

경제학상은 다른 노벨상과 달리 역사도 짧고 문제점도 많이 지적되고 있다. 특히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들이 미국과 서

 

유럽쪽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학파의 쏠림현상도 강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저자는 머리말에서 자연과학분야의 노벨상과 경제학상은 '이론적인 공헌'을 평가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수상자 대부분이 영어권이라는 점을 볼때 논문의 번역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

 

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비영어권에서는 불리한 점이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1976년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 이후 30년 동안 경제학상을 수상한 사람 가운데 흥미롭고 중요하다고 생각되

 

는 11명의 경제학자를 선별하여 그들의 연구와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책의 집필진인 야자와 사이언스

 

연구소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유추할 수 있을거라 강조하지만 2008년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에 대해서만큼은 버블 붕괴

 

후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을 취하지 않았다고 반복적인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생각되는, 어찌보면 지극히 개인적

 

인 문제들까지 공격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이성적이지만 합리적이지 않다는 대니얼 카너먼의 보고 싶은것만 보고 듣고

 

싶은것만 듣는 그들 또한 행동경제학의 연구대상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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