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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관광지

오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관덕정


관덕정을 찾았다.

세종 때 지어진 관덕정은 이조때 지어진 유물인데 오래돼 보이지 않았다.

바로 옆 제주 목관아지(제주목사의 관아 터)는 제주의 상징이다. 제주에서 왕과 같은 권위를 누렸던 제주목사가 집무를

보던 곳이다. 하지만 감동적이지 못하다. 새로 지었다. 너무 잘 지어져 옛 건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관덕(觀德)이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에서 따온 말로,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이 누정 건물은 『탐라지』에 의하면 조선 세종 30년(1448)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웠다.성종 11년(1480) 목사 양찬이 고친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다.지금 있는 건물은 1969년 보수한 것으로 원래의 건축 수법은 17세기 전후의 것으로 추정한다.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건물은 사방이 탁 트이게 뚫려 있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뻗쳐 나온 재료를 기둥 위에 두 개씩 짜 놓았다(이익공 양식).‘관덕정(觀德亭)’이라고 쓴 현판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쓴 글씨라고 전하며 지붕 처마가 긴 것이 특징이었는데 1924년 일본인들이 보수하면서 처마 부분을 많이 잘라냈다.제주도의 대표적 누정 건축으로 건축사 연구의 소중한 자료이며 건물 안쪽 대들보와 대들보와 그 아래에 그려진 작자를 알 수 없는 벽화도 상당히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낭쉐가 이곳에 있었다.

고대 탐라국시절 입춘날 탐라 왕이 직접 백성들 앞에 나서서 밭을 갈아 농사짓는

모습을 친히 재현해 보이는 상징적인 모습을 입춘춘경 또는 춘경적전이라 했다.

이때 특별히 나무로 소를 만들어 부정한 액이 범접할 수 없도록 신성한 장소에 금줄을 치고

보관하였는데 이 제작된 소를 낭쉐라 하였다.

지금도 탐라입춘굿놀이 때 이 낭쉐를 끄는 행사가 있다.

가운데 낭쉐가 이번 2010년 탐라입춘굿행사 때 끌었던 낭쉐이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제주에 남아있는 돌하르방은 총45기이다. 제주시 이곳 관덕정,시청,삼성혈 등에 21기 성읍(옛 정의현)에 12기 대정에 12기가 있다한다. 석상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큰 눈에 자루병 같은 코를 가졌으며, 입술을 다문 얼굴에 감투를 썼고, 두 손을 배에 나란히 모으고 서 있다. 제주시에 있는 것과 성읍리에 있는 것은 기석()을 받쳤고 특히 제주시의 것은 기석 전면에 O형과 L형의 굴각이 있다. 이 석상은 성문 앞에 서서 위엄을 보이면서 수호신적 ·주술적 ·금표적()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되어 육지의 장승과 그 기능이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덕정의 바로 옆으로는 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지나간다. 관덕정이 위치한 삼도동 일대는

지난 제주의 번화가이다. 지금은 상권이 칠성통,시청,신제주쪽으로 다 이동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