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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책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는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그동안 우리에게 단편적으로만 인식되었던 만주국이 1932년 3월부터 1945년 8월까지 고작 15년 이라는 짧은 기간동

 

안 일본과 한국의 현대사의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는 두 인물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바로 만주국관리 출신으로 '쇼와의 요괴'로 불린 기시 노부스케와 만주국 장교출신의 독재자 박정희다.

 

이들은 저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관동군의 독주에세 패전에 이르는 시기를 비연속의 시대라 규정했던 작가 '시바 료타

 

로'의 조어인 태어나서는 안될 부정적 뉘앙스의 귀태로 표현된다.

 

 

기시 노부스케는 만주국 산업부차관으로 만주국 산업 전체를 주물렀고 패전 후 기시는 A급 전범으로 기소되기도 했으

 

나 한국 전쟁을 계기로 활동이 풀려 1957년 일본 총리대신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만주국 신경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거처 만주군중위로 패전전까지 항일세력을 토벌하던 박정희는 한국군 장교이자

 

남로당원으로 암약하다 체포되어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만주의 친일인맥으로 구사일생 하게 되고 역시 6.25가 발발하

 

면서 인생역전의 기회를 잡는다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다.

 

 

저자들을 패전 후 일본의 재건구상을 한 기시 노부스케나 1960-1970년대 조국 근대화를 표방한 박정희가 만주국의 인

 

적유산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전후 한국과 일본이 경제개발정책이나 각종 국가통제시스템 또한 만주국에서 실험된 것

 

이거나 만주국 인맥에 의해서 주도된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 보수정치구조나 박정희 독재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오족협화'와'왕도낙토'를 표방한 고도의 국방국가인 만

 

주국 이라는 것이다. 그 중심에 기시와 박정희가 있다.

 

 

이 책은 현대 한국과 일본의 국가원형 및 인적자원이 이미 만주국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패전 후 일본과

 

해방 후 한국의 현대사를 만주국 인맥이 어떻게 장악했는지를 보여준다. 한일회담 후 이들을 중심으로 하는 한일간의

 

커넥션이 얽히는 가운데 만주국의 부정적 유산이 어떻게 화려하게 부활하는지를 고찰한다.

 

 

5.16 이후 국가재건운동, 새마을운동 따위의 국민개조운동, 우리가 초등학교시절 그토록 외웠던 국민교육헌장과 국기

 

에대한맹세, 교련시간의 총검술, 충효교육, 국민체조, 조기청소, 반상회, 고도국방체제를 목표로 한 총력안보체제와 국

 

가통제형 경제개발5개년계획 등 유신시대의 전후에 시행된 수많은 정책과 기구는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과 만주

 

국에서 실행했던 국가주의 요소를 그대로 본떠 부활시킨 것이였다. 그것이 '국기에대한맹세'가 아니라 권력자 자신에

 

대한 충성맹세로서 철저히 이용한 것이고 '반공'이라는 슬로건이 권력유지의 최고의 동방자였던 것이다.

 

 

한 세기가 바뀐 이 시점에 이 두사람의 중요성은, 기시도 가고 박정희도 떠났지만 그들의 망령은 아직도 한국과 일본의

 

사회구조속에 머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후계자들을 양산해 현실의 힘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직계혈

 

연으로 말이다.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 아베 신조가 최근의 일본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총리로 재등극했고 그는 일본 극우의 대변자

 

로 한일과거사의 대해 망언을 쏟아내는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유신독재 40년을 맞아 박정희 동상이 곳곳에 세워지고

 

새마을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박정희기념도서관 마저 세워졌다. 박정희 딸 박근혜는 제 18대 대통령 새누리당

 

대선후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저자들은 <두사람(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관에 제대로 못질을 안한 탓인지 아니면 그들을 부

 

당하게 홀대해온 진보적 역사관의 왜곡이 이제야 바로잡혀 가고있는 것>인지 묻고 있다. 답해야 할 자는 기시나 박정

 

희가 아니라 우리자신일 것이다. 오늘은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이다.